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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드라마,Netflix

프리다

by sshongs 2004.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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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속 '프리다'                                               실제 '프리다'

 


실존했던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을 영화한 작품이다.

우선, 양쪽 눈썹이 붙은 약간은 특이한 외모가 나의 관심을 끌게 하여 보게 되었다. 이 여자에 대해서 한번도 들어본적은 없었지만, 왼지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인상이 나로하여금 이 영화를 보게 하였다.

영화를 보게 된 동기는 허접스러웠지만, 실제 인물과 매우 흡사한 외모의 여주인공 '셀마 헤이엑' 그녀의 연기력은 정말 훌륭했다고 말하고 싶고 이 영화를 선택한 내 선택에 결과적으론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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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간중간 그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서 시각적으로도 매우 즐거웠으며, 중간중간 그녀의 작품과 실제영상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화면은 굉장히 날 즐겁게 했다.


기대하지 않고 봤을때 더 가슴에 와닫게 되는 영화인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내가 좋아하는 화가가 한명 더 늘었다. ㅎㅎ
프리다 칼로는 이 영화를 통해서 부활했다. 강렬한 느낌의 그녀의 그림과, 순탄치 않은 그녀의 삶을 이렇게 본다는 것이 굉장했다.

이영화! 완전 강추다!
!

===제작노트=======================================

1983년부터 2003년까지, 한 세기를 뛰어넘은 노력의 결실
프리다의 영혼이 축복한 꿈의 작업.
  
1983년 헤이든 헤레라(Hayden Herrera)의 책 [프리다]가 출판되었을 때, 프로듀서 낸시 하딘은 이 책을 들고 모든 스튜디오를 방문한다. 그러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라틴계 화가의 이야기를 영화화해 줄 스튜디오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꼬박 10년이 흐른 뒤, 화가 프리다가 재조명 되면서 프리다는 헐리우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이름이 되었다. 이 무렵 그를 만난 셀마 헤이엑은 영화의 주연뿐 아니라 프로듀서를 자청한다. 알프레도 몰리나, 안토니오 반데라스, 제프리 러쉬, 애슐리 쥬드 등 꿈의 캐스팅으로 무장한 헤이엑은 미라맥스의 하비 웨인스타인을 찾아가고, 시나리오는 물론 그녀의 철저함과 불굴의 의지에 반한 웨인스타인은 영화 <프리다>에 투자, 제작을 결정한다. 곧 줄리 테이머를 감독으로 영입한 뒤 2001년 늦은 봄, 20여년의 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고 <프리다>는 제작에 착수하게 된다.
  
촬영은 프리다와 디에고가 살았던 1920년대 코요아칸과 가장 흡사한 분위기를 가진 도시인 푸에블라에서 대부분 진행되었고, 멕시코 정부의 협조하에 국립 예비학교, 마제스틱 호텔, 디에고의 작품이 보관되어 있는 교육부 청사 등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는 프리다의 생가는 멕시코 시티의 Churubusco 스튜디오에 집과 안마당을 똑같이 재현한 세트에서 촬영되었다.

===홍성진의 영화해설==============================

   실존했던 멕시코 화가로서 현재도 그녀를 추종하는 많은 팬들이 있으며, 그림은 최고가에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프리다 칼로(1907-1954)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 헤이든 헤레라(Hayden Herrera)의 원작 <프리다: 프리다 칼로의 자서전(Frida: A Biography Of Frida Kahlo)>을 바탕으로 멕시코 출신의 미녀 배우 셀마 헤이엑이 그녀의 인생을 연기하고 있다. 아카데미 분장, 음악상 등 2개 부문 수상. 2002 베니스 영화제 개막작.

  영화는 10대부터 47세로 프리다 칼로(Frida Kahlo)가 세상을 뜨기까지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데, 불운이 많이 따랐던 그녀에 대해 항상 정력적이고 고집세며 독선적인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개방적이었고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자였다. 또한 양성애자였으며 난잡한 성생활을 즐겼다. 18세의 나이에 프리다는 버스 사고로 큰 부상을 입었다. 수차례의 수술 후에도 휠체어에 의지하는 신세가 된다. 그녀는 술과 진통제에 쪄들게 되었고 육체적 고통과 그녀의 아름다움을 그림 속에 쏟아냈다. 그러면서 그녀는 유명한 화가이자 오입쟁이같은 남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 떠들썩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결국 술과 약물 중독이 그녀를 47세의 나이에 죽게 만든다. 영화는 그녀의 인생을 다루지만, 그러한 시기에 탄생한 그녀의 작품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셀마 헤이엑과 제니퍼 로페즈가 주인공 자리 물망에 올랐는데, 일자 눈썹 외에도 프리다의 두드러진 외모에 흡사한 셀마 헤이엑에게 기회가 주어졌고, 그녀는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이 영화에 열정을 보였다. 특히 그녀는 프리다의 트레이드 마크인 일자 눈썹처럼 보이게 자신의 눈썹을 짙게 좀 더 자라게 했다고 한다.각본에는 일부 헤이엑의 남자 친구인 에드워드 노튼이 참여하고 있으며, 그는 까메오로 넬슨 록펠러 역할로 잠깐 나오기도 한다. 그외 애슐리 쥬드와 안토니오 반데라스도 단역으로 우정 출연했다.

  이 영화의 제작 기획이 있을 당시 MGM의 자회사인 UA(United Artists)에서도 동시에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를 담은 또 다른 영화 <the Two Fridas>가 기획되고 있었다. 그러나 주연으로 약정됐던 제니퍼 로페즈가 다른 영화 때문에 떠나자 <프리다>가 개봉된 시점에서도 먼 훗날을 기약하며 여전히 촬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 개봉시 평론가들의 반응은 호평 쪽이 우세하였다. 먼저 워싱턴 포스트의 스티븐 헌터는 "끝도 없이 흥미롭다."라고 이 영화를 치켜세웠고, 뉴욕 옵저버의 렉스 리드 역시 "빈센트 미넬리가 빈센트 반 고흐의 심리적 혼란을 <열정의 랩소디>의 스크린에 접목시킨 이래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영화"라며 칭찬했다. 또 USA 투데이의 클로디아 푸이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헤이엑 생애에 가장 뛰어난 연기였다. 그리고 이 영화를 위한 그녀의 열정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라며 헤이엑의 연기를 칭찬했으며, 버라이어티지의 데보라 영 역시 "이글거리는 열정과 중심 역할로의 접근들을 통해 헤이엑은 칼로의 꺾을 수 없는 삶, 사랑, 그림에 대한 의지를 묘사하면서 그녀 자신이 칼로에 필적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라고 주연 배우인 헤이엑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나타냈다. 반면, 실망한 반응을 나타낸 평론가 중 하나인 롤링 스톤의 피터 트라버스는 "공명(共鳴)할 수 있는 어떤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으면서 프리다 인생의 모든 중대한 사건마다 멈춰서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이는 각본 때문에 절름발이가 된 듯..."하다며 미처 공감할 시간조차 주지않고 프리다의 일생을 모두 다루려했던 어리석음을 지적했고, 워싱턴 포스트의 데슨 호우 역시 "영화는 칼로를 다룬 영화 치고는 기가 막히게 단조롭다."라고 실망스런 반응을 보였다. 또 헐리우드 리포터의 커크 허니컷은 "난잡하고 잔인하도록 고통스런 인생을 정연하게 만듦으로써 이 영화는 뭔가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라고 지적하는 등 대체로 살마 헤이엑의 연기와 열정에 극찬을 아끼지 않은 반면, 평탄하거나 평범하지 않았던 인물의 일생을 담은 시나리오의 평이한 구성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평론가들이 있었다.

===프리다 칼로=====================================

 

1907년 멕시코시티 교외 코요아칸에서 출생하였다. 독일인인 프리다 칼로의 아버지는 그에게 '프리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독일어로 평화를 의미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멕시코 혁명 당시 농민 지도자인 자파의 부하들을 보살펴 준 것을 계기로 멕시코 청년공산당에 가입하여 죽을 때까지 골수 스탈린주의자였다.

7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게 되었고, 1925년 18세 때 교통사고로 척추, 오른쪽 다리, 자궁을 크게 다쳐 평생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는 등 이 사고는 그의 삶 뿐만 아니라 예술 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사고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그의 작품 세계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1939년 르누와 콜 갤러리에서 열린 멕시코전에 출품하여 파블로 R. 피카소(Pablo Ruizy Pacasso)·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등으로부터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받았으나 프리다 칼로 자신은 자신의 작품 세계가 유럽의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멕시코적인 것에 뿌리를 둔 것이라며 정체성을 강하게 지켰다.

삶은 매우 연극적이었고 항상 여사제처럼 전통 의상과 액세서리를 착용하였으나 사회 관습에는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에게는 20세기 여성의 우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작품으로는 사고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고자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 심리 상태를 관찰하고 표현했기 때문에 특히 자화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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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누운 프리다 칼로

7살 때 앓은 소아마비, 18살 때의 대형 충돌사고 그리고 회저병으로

절단된 오른쪽 다리, 일곱차례의 척추 수술도 그녀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세 번에 걸친 유산과 남편의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으며, 이는 고통스러운 재앙으로 받아들여져 《헨리포드 병원》(금속에 유채, 38×30.5㎝, 1932), 《나의 탄생》(캔버스에 유채, 173.5×173㎝, 1932),《프리다와 유산》(종이에 리소그래피, 31.7×23.5㎝, 1932) 등과 같은 작품들로 형상화되었다. 이 작품에서 프리다 칼로의 모습은 탯줄과 줄 혹은 뿌리 같은 오브제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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